어젯밤 UFC서울의 경기는 토요일밤을 꽤나 뜨겁게 달궜다. 한국 선수들의 연이은 선전으로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UFC대회에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는 한국 관중들의 함성을 외면하지 않은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여러선수들이 참가하지만 그 중에서도 대중들의 관심 제일 중심엔 추성훈과 김동현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유도 국가대표 출신으로 한국 유도의 파벌싸움으로 일본국적을 취득하고 보란듯이 아시안게임에서 일본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던 이력이 유명세의 시작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된건 슈퍼맨이 돌아왔다란 예능 프로그램에서 딸 사랑이와 보여준 거칠지만 딸바보 아빠의 모습으로 한국 국민들에게 매우 친숙한 사람이 되어 티비 속 광고에서도 예능에서도 그의 모습을 많이 봐 왔다.
그래도 추성훈의 본업은 격투기선수, UFC라는 가장 수준 높은 격투기 단체의 선수라는 것이다. 한국 나이로 이제 41세를 맞이한 그가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조차 대단하고 모두가 본대로 추성훈의 몸은 그의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잘 훈련되어 있기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생겼다. 좋은 경기로 화끈한 KO승을 올리길 상상하지만 반대의 상황이 나올수도 있기에 기대반 걱정반의 맘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경기를 시청했다.
초반은 탐색전과 같이 신중한 경기를 펼치며 누가 더 잘했다고 판단하기 애매할만큼 막상막하의 경기였다. 인상적인 부분은 알베르토 미나의 왼쪽 허벅지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 추성훈의 로우킥이 적절히 구사돼 미나의 기동력은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계속된 박빙의 경기 속에서 추성훈이 하이킥을 날리는 순간 미나는 정확히 추성훈의 급소를 가격한다.
이 장면을 나중에 리플레이 줬는데 경기장의 그 많은 관중이 탄식을 내뱉었다. 남자라면 알만한 충격, 얼마 쉬지 않고 경기를 재개했지만 순간적으로 힘이 빠지고 아랫배가 묵직하게 아파오는 충격이 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온 영상을 되돌려봤는데 미나의 시선이 추성훈의 급소를 노리는것처럼 그의 시선과 발방향이 정확히 일치했다는 것은 추성훈을 응원했던 사람으로써 굉장히 의심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이 경기의 핵심은 여기였다. 로블로를 맞기 이전과 이후 경기의 양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추성훈의 흐름이 끊긴 후 미나는 시간을 벌며 숨을 골랐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의 추성훈이 발이 주춤한 틈에 미나는 힘을 내기 시작했고 제대로 들어간 카운터 펀치를 날리며 크게 흔들리는 추성훈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기 위해 무차별적인 타격을 가했다.
참 보기 싫은 장면이었다. 정말 친한 형이 얻어맞는 것처럼 속상하고 마음 아프고 사랑이네 가족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왜 이리도 잔인하게 보이는지 제발 제발이라 외치며 두 주먹을 꽉 움켜쥐는 순간 공이 울리며 2라운드는 종료됐다.
추성훈의 정신력은 육체를 완전히 지배했다. 경기를 지켜본 모든 사람은 졌다고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남은 시간이 길었다면 분명 레프리 스톱으로 경기는 매조지됐을 것이다. 하지만 추성훈은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엄청난 맷집, 정신력으로 경기를 끝까지 끌고 갔다.
3라운드 회복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을텐데 추성훈은 본인의 남은 힘을 끝까지 뽑아내며 최고의 경기를 보여줬다. 상대인 미나는 중동축구를 좋아하는지 침대축구에서 모티브를 얻어온 침대격투기로 경기장의 찾은 관중들의 야유를 이끌어냈다. 일방적인 3라운드의 우세를 보였지만 이 날의 경기결과는 2대 1 판정패였다. 미나의 승리가 외쳐질 때 관중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스포츠에서 결과는 정말 중요하다. 그 결과로 선수의 활동이 이어질지 아닐지에 대한 결정이 이뤄지기도 하고 그에 따른 부와 명예를 얻기도 한다. 패배한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사람들의 격려와 박수 정도면 많이 받은 것이다.
추성훈의 패배를 나무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름다운 패배? 결과는 졌지만 이긴 경기? 여러가지 수식어가 나오는 경기였다. 그만큼 추성훈이 이 경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 것이 많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승리를 가장 원한 그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인간 추성훈으로써의 최선을 다한 포기하지 않은 그 모습을 기억해 주는 것이다.
그 때 참 대단했다고 적어도 내게 그 경기는 당신이 진 경기가 아니라 승리라는 기록이 공식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지만 분명 당신 자신을 이겨낸 순간이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앞으로 얼마나 추성훈이 선수로 활동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님을 보여주는 경기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추성훈의 인생을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싶다. 최선을 다한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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